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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지난 9월 25일 발표한 ‘2024년 7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7월 출생아 수는 2만 601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1만 9,085과 비교해 1,516명(7.9%↑) 증가했다. 7월 출생아 증가 규모는 같은 달 기준으로 2012년 1,959명 이후 12년 만의 최대치이며, 출생아 증가율로는 같은 달 기준으로 2007년 7월 12.4%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다고 한다. 2022년 8월 이후 8개월 연속 혼인 건수가 늘어난 것이 최근 출생아 수에 반영되는 것으로 통계청은 분석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누적 출생아 수는 13만 7,913명으로 전년 대비 1.2% 적다. 다만 하반기에 출생아 수 증가세가 이어지면 연간으로는 전년보다 출생아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출생률의 선행지표인 혼인 건수도 올해 7월 1만 8,811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 1만 4,153건과 비교해 4,658건(32.9%↑) 증가했다. 통계가 시작된 1981년 이후 7월 기준 역대 최고 증가율이자 전체 월로 봐도 1991년 1월 50.6% 이후 28년 6개월 만에 최고치다. 코로나19 여파로 지연됐던 결혼이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집중되면서 늘어난 영향이다. 물론 코로나19 기저 효과가 크지만 그렇다고 해도 혼인과 출산율 반등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정부는 이러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흐름을 반드시 이어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연근무제 도입이 필수라는 의견이 제시되어 주목(注目)받고 있다.
지난 9월 23일 한국노동연구원과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인구구조 대전환, 일하는 방식의 미래에 대응한 근로시간 제도 개선’이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50년 후면 인구가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저출생·고령화 시대를 맞아 기업 생산성과 출산율을 높일 대안으로 ‘근로시간 유연화’를 제시하며, 초저출생과 디지털 기술 발전, 근로윤리 변화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저출생·고령화 문제가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근로자들의 ‘일하는 방식’과 ‘근로시간 제도’를 바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구감소 시대의 위기를 넘기 위해선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여성과 고령층 인력의 활용을 늘려야 하는데 근로시간 선택권과 유연근무의 확대가 절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서울대학교 이정민 교수는 “장년층과 여성 유휴 인력이 노동시장에 유입되고 있고 노동시장도 변화함에 따라 근로시간제도 변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라며 “일하는 방식의 변화 없이는 노동생산성 혁신도 이뤄질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사업장 수준에서 최적의 근로시간제도를 선택하고 이를 존중하는 방식의 자율적 제도로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근로계약 준수, 건강권 보호, 근로자 시간결정권 보장과 같은 원칙을 유지하되 실제 운영은 사업장 수준에서 자율화하고 객관적인 보상체계를 확립해 임금투명성도 높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희대학교 엄상민 교수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업체에서 생산성이 더 빠르게 증가하고, 월 근로시간 변동성도 낮은 경향이 확인된다”라며 “근로시간제도 운영에서 지금과 같은 획일적 규제보다 선택할 수 있는 선택폭을 유연하게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설명했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흥준 교수는 “인구감소가 불가피한 미래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노동하는 대부분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에 중요하다”라며 “장시간 노동을 남용하지 않되 최소한의 법적 기준을 정한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노사의 선택 폭을 넓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고 한국노동연구원 성재민 부원장은 “정부의 정책 방향은 법정 근로시간의 추가적인 단축보다는 상황에 맞는 유연한 근로시간제 도입과 운영이 우선적 목표가 돼야 한다”라며 “근로시간계좌제 도입, 근로시간 활용한 연차휴가 ‘5인 미만 기업’ 점진적 확대, 연차휴가 금전보상 금지, 육아휴직 보편화 등 쉼 관련 제도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업체 패널조사 등을 통해 “유연근무제 도입 업체의 생산성이 더 빠르게 증가했다”라는 분석 자료도 제시됐다. 일반적으로 09:00 출근 18:00 퇴근이라는 정형화되고 경직된 근무제도를 과감히 탈피하여 유연성을 갖자는 것이다. 우선 ‘시차출퇴근제’는 1일 8시간, 주 40시간의 소정근로시간을 준수하면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근무제도의 하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22년도 한국 가구와 개인의 경제활동’ 보고서에서는‘시차출퇴근제’를 경험한 사람의 절반 이상인 53.1%는 이 제도가 일반 근무 형태보다 “더 생산적”이라고 답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13일 발표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에서는 현행 ‘주 52시간제’를 더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는 광범위한 공감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국민 절반 이상(54.9%)이 경직된 주 52시간제가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 반영을 저해한다’라고 응답해서다. 그만큼 근로시간 유연화는 시급한 과제라는 방증(傍證)이다.
업무량이 많을 때는 한꺼번에 몰아서 일하고, 쉴 때 쉴 수 없는 현행 주 단위 연장근로 통제로 어려움을 겪은 기업 두 곳 중 한 곳이 수주를 포기(30.6%)하거나 법·규정 무시(17.3%) 같은 자해적 방식으로 대처한 아찔한 실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적절한 보상이 있다면 연장근로 의향이 있다는 근로자도 41.7%에 달했다. 기업과 근로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방식으로 근로시간 제도를 개선해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정부 당국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고 일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일하는 시간보다 생산성이 중요해진 것도 근로시간 유연화를 더 미룰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기업의 생산성 증대뿐만 아니라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 15~49세 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이라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지난해 0.72명까지 떨어진 데다 올해 출산율은 0.68명까지 주저앉을 상황에서 저출생 해소를 위해서도 근로 시간 유연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유럽연합(EU) 15개국의 합계출산율과 유연근무 활용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출산율과 여성 고용률이 높은 나라에서 유연근무 활용 비중이 높았다. 유럽에서는 6세 이하 자녀를 둔 경우 80%가 유연근무를 활용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활용률은 15%에 불과하다. 유연근무는 고용노동 분야에서 저출생을 해결할 강력한 카드로 거론된다.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쓰는 유럽에서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은 양(+)의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특히 네덜란드는 ‘시간제 정규직’의 천국이다. 2022년 기준 네덜란드 전체 취업자 중 주당 35시간 이하로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의 비율은 3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한국은 16.4%이며, 독일은 22.2%, OECD 평균이 16.1%다. 근로시간·형태 다양화와 유연성 확보는 일과 생활의 균형은 물론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위해 미룰 수 없는 숙제다. 노동 개혁의 방향도 기업과 근로자 상황에 맞는 근로시간 유연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행히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9월 25일 제4차 인구비상대책회의 겸 성과공유회를 열고 임신·육아기 근로자에 대해 재택근무,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제를 법제화하기로 했다. 또한 일·생활 균형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유예하고, 금융 지원도 강화한다. 기업 근무 형태 다양화와 각종 지원을 통해 저출생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저출생 해법의 열쇠는 사실상 기업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동참을 끌어내려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다. 이날 공유된 ‘일·가정 양립 우수기업 사례’는 저출생 해소를 위해 향후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화장품 중견기업인 ‘마녀공장’은 ‘완전자율출퇴근제’를 운영하여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결과 2021년 말 기준 46%였던 이직률이 2023년 말 기준 12%로 대폭 낮아졌고, 같은 기간 매출액은 647억 원에서 1,018억 원으로 57.3%이상 급증하는 성과가 나타났으며, 올해 사내 출생아 수가 전년 대비 3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임직원 숫자가 100여 명에 불과하지만, 최근 3년 새 매출은 두 배로 급증했다. 의약품 제조 중소기업인 한화제약도 생산직·사무직·영업직 등 직원의 업무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유연근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집합 근무가 필요한 생산직 직원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하루 8시간씩 근무하고,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11시간 30분씩 일하도록 해 금요일과 주말 휴무를 보장하는 ‘주4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고, 사무·연구직원들은 ‘시차출근제’를 도입하면서 남성 직원들의 육아 참여가 71%까지 증가하는 효과를 거뒀다. LG전자도 임신 전에 연간 최대 6일의 ‘유급 난임치료 휴가’를 주고, 장기간 안정이 필요한 경우를 위해 연간 최대 3개월의 ‘난임치료 휴직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육아휴직 사용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육아휴직 사용 시 평균 수준의 인사평가 등급을 보장하고, 복직 시 원래 일하던 부서로 복귀하도록 제도화했다.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에 그룹사와 협력사뿐 아니라 지역 중소기업 직원 자녀까지 이용할 수 있는 ‘상생형 공동직장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협력사 직원들은 우수한 인프라를 갖춘 상생형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길 수 있어서 안심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가족 친화 경영에 나서며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일·가정 양립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당수 중소기업이 비용 부담 등 이유로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연근무제만 해도 많은 근로자들이 희망하고 있지만 기업의 미온적인 태도로 시행률은 지난해 15.6%에 그치고 있다. 이마저도 대기업·정규직 근로자만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활력을 잃은 ‘노인 대국’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정부가 출산·보육·육아는 물론 주거·교육·고용 등에서 파격적인 대책을 마련해 실행해야만 한다. 현재 수도권 평균 출퇴근 시간은 120분에 달하고, 하루 자녀 돌봄 시간은 48분에 불과하다. 긴 출퇴근 시간이 일·가정 양립에 장애물로 기능하고 있는 만큼 유연근무제 확대는 시급한 과제다. 또한 청년층에게 출산과 육아가 행복한 경험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만 인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저출생 문제는 기업의 협조 없이 정부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는 효과가 입증된 일·가정 양립 정책을 많은 기업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일·가정 양립에 앞장서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 등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담보해 줘야만 한다. 특히, 비용 부담이 크거나 직원 수가 적어 유연근무제 도입에 애로를 겪는 중소기업들도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창의적 정책을 개발해 시행해야 한다. 결론은 유연근무 활성화로 출생율과 기업 생산성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 한꺼번에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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