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성장하면 상 대신 벌 받는 기업 생태계, 성장 사다리 다시 세워야

편집국 / 기사승인 : 2025-08-14 17: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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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세계 최대 시장을 가진 미국이 자유무역주의를 상징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종식을 공식화했다.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8월 7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가 세계 각국과 벌이는 무역 협상을 ‘트럼프 라운드’로 부르며 WTO를 대체할 세계 무역 질서로 규정했다. 또한, 미국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WTO 분쟁 해결 절차 대신 합의 이행을 철저히 감시하고, 이행하지 않는 경우 “더 높은 관세율을 신속히 재부과하겠다.”라며 보다 강경한 자세를 드러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구축돼 온 자유무역 질서가 막을 내렸다는 선언이다.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68개국과 유럽연합에 부과한 10~41% 상호관세도 공식 발효됐다. 바야흐로 신(新) 보호무역 시대의 시작이다. 그동안 수출로 먹고산 한국의 입장에선 세계 무역의 패러다임(Paradigm) 변화에 따른 새로운 성장전략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자유무역의 종언(終焉)을 고한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극적인 타결을 일궈냈다. 지난 7월 31일(미국시각 7월 30일) 미국은 한국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를 당초에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7조 원) 투자, 1,000억 달러 LNG 구매 등의 무역 합의를 끌어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약속한 3,500억 달러 규모 대미(對美) 투자가 본궤도에 오르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국내 투자를 늘리기란 쉽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이는 국내 일자리를 줄이고, 국내 투자 여력을 축소하는 효과로 돌아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내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가 이제 국가 차원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당연히 국내 투자 위축은 고용감소, 나아가 내수부진 악순환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국내 공장이 이전하고, 이에 따른 인력 감축이 이뤄지면서 인구소멸이 빨라지는 지역도 적지 않을 것이다.

중견·중소기업들이 관세 부담을 덤터기 쓰는 상황도 걱정이 된다. 수입업체가 치를 인상 가격 중 일부를 국내 제조사가 떠안게 되고, 이 여파가 원자재와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를 타격하는 식이 반복된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들은 현지의 고임금·고물가 장애물도 넘어야만 한다. 투자가 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와 일자리 감소도 급속히 가속화(加速化)될 가능성도 크다. 지난 2분기 우리 경제는 가까스로 0.6% 성장했지만 계속된 글로벌 ‘경기침체’에 ‘관세 파장’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0.8%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보인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실제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현상이 2020년부터 지속하고 있는가 하면 한국 경제가 과거 고도성장기를 거치고 나서 성장이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정권 교체 때마다 잠재성장률이 1%포인트씩 하락하고 있는 우리 경제는 ‘엔진 꺼진 비행기’와 마찬가지라는 게 기업인들 사이에 일반화된 진단이다. 지금은 운 좋게 바람을 타고 날고 있지만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 경제가 만성적인 저성장 국면에 고착(固着)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중소기업이라는 뿌리와 중견기업이라는 허리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성장 사다리 복원을 서둘러라는 경제계의 일치된 지적이다. 꺼져가는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 전문가들은 ‘보호 일변도의 중소기업 정책’과 ‘과잉 규제 중심의 대기업 정책’ 그리고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중견기업’ 등 산업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직원 등이 늘어나는 성장 기업에 규모와 관계없이 더 많은 ‘인센티브(Incentive)’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23년 기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3001개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5704개나 된다. 도약보다 추락이 두 배 가까이 많은 비정상적인 기업 생태계다. 한 해 7~8개이던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올라선 기업도 최근 2년 연속 2개에 그쳤다.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순간 80여 개의 혜택이 사라지고 20여 개의 규제를 받게 되니 벌어지는 일이다. 지원과 규제가 기업 규모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되다 보니 매출 쪼개기 같은 편법이나 성장을 회피하는 피터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더 성장할 때 발생하는 추가 규제 부담 때문에, 성장을 미루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대기업 등의 과도한 규제로 작용하는 ‘모래주머니’들을 서둘러 제거해줘야만 한다.

이러한 최악 상황의 이면에는 우리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이 허리인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중하위권 대기업이 제2의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성장 사다리’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198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Robert Solow)가 내놓은 성장회계학이 주장하듯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자본, 노동, 생산성이라는 3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견인하는 기업이 의도적으로 성장을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에 갇혀 버렸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중견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진입하면 세제 등 수많은 혜택이 오히려 줄어든다. 간단한 예를 들면 중소기업은 일반 연구·개발(R&D)에 대해 25%의 세액공제율을 적용받지만, 중견기업이 되면 8%, 대기업은 0~2%로 크게 줄어든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은 R&D 조세 지원율이 기업 규모별로 차등이 아예 없거나, 만약에 있다고 해도 차이가 우리나라처럼 크지 않다.

반면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적용받는 규제는 반대로 급증한다. 중소기업이 자산 5,000억 원 이상 중견기업이 되면 126개의 규제가 추가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산 5조 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성장하면 65개의 신규 규제가 추가되고, 자산이 GDP의 0.5%인 약 10조 원이 되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분류돼 순환출자 금지, 상호출자 제한, 채무보증 금지 등 68개의 강력한 규제가 더 생기게 된다. 기업 성장을 위한 인수·합병(M&A)과 벤처 투자의 길도 좁기는 마찬가지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기업이 신사업에 진출하고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은 생존과 발전의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는 자회사 지분을 상장사 30%, 비상장사 50% 이상 보유하도록 강제하고 있어 외부 기업과 소규모 지분 투자를 통한 합작이나 사업 확장을 되레 어렵게 만든다. 대기업의 혁신 DNA를 ‘스타트업(Start-Up │ 혁신형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초기 창업 기업)’에 이식(移植)하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통로인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 Corporate Venture Capital)’ 역시 각종 규제에 묶여 있다. 외부 자금 조달을 40%로 제한하고, 해외 투자 한도를 20%로 막아놓은 규제는 글로벌 CVC와 경쟁해야 하는 우리 기업에는 족쇄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기업이 성장하면 상(賞) 대신 벌(罰)’을 받는 구조부터 바꾸는 게 급선무다. 중소기업 관련 예산은 35조 원에 달하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되레 뒷걸음질 치고 있다. 적지 않은 예산이 ‘좀비기업’에도 뿌려지며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 수는 적지만 매출, 고용 등 비중이 17%나 되는 중견기업 예산은 지난해 1,000억 원에도 못 미쳤다. 정책자금 지원에서는 소외되고 대기업처럼 회사채를 발행하기도 어려운 중견기업은 가장 높은 대출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야만 한다. 성장하는 기업이 ‘인센티브’를 받기는커녕 외려 이중, 삼중의 제재를 받는 셈이다. 다행히 정부가 기업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를 전면 재검토한다고 하니 천만다행(千萬多幸)이다. 정부가 현행 중소·중견기업 지원제도 혜택이 기업 성장에 따라 급감하지 않도록 ‘점감형’으로 개편을 추진한다. 배임죄 등 경제형벌의 합리화 방안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경제단체들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8월 5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성장전략 TF 제1차 회의를 열고 이와 같은 안건을 논의했다. 우리 경제가 다시금 활력을 찾기 위한 해법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부러진 성장 사다리를 서둘러 복원해 기업이 성장의 과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선 중소기업이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하더라도 R&D, 시설투자, 고용 등에 대한 각종 혜택이 급격히 축소되지 않도록 공제율 등을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유연한 스무딩(Smoothing) 방안을 서둘러 도입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기업이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고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어서다. 기업의 사업 재편과 신사업 진출을 가로막는 규제도 서둘러 과감히 혁파해야만 한다. 지주회사가 미래 사업 재편 등을 목적으로 지분 투자를 하는 경우 지분율 규제의 예외도 과감히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옥석을 가리지 않는 보호 일변도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중견기업, 대기업 과잉 규제라는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고 무너진 기업의 성장 사다리를 다시 세워야만 한다.

또한, CVC의 외부 자금 및 해외 투자 한도를 완화해 국내 벤처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 기업이 글로벌 유니콘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그룹별로 순환출자가 상당 부분 해소됐고, 지주회사 체제로 지분 구조도 단순화된 만큼 현행 지분·출자 규제 등 대기업에 대한 사전 규제를 완화해야만 한다. 지금 우리는 ‘아차 하면 나락으로 추락하는’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야말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풍전등화(風前燈火)로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기업이 성장해 투자와 고용을 늘려야만 위기의 한국 경제를 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각별 명심하고 법령 하나, 제도 하나를 만들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할 것이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들의 불공정한 이익 추구를 원천 차단하는데도 소홀히 하면 안 될 것이다. 투자 차익 회수율이 10% 선에 그치는 단기매매 차익 반환부터 의무화해야 한다. 자본시장을 개혁하려면 정부와 기업, 투자자의 인식 전환이 같이 이뤄져야 하며 상장사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실행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믿고 투자할 시장환경 조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약이나 발표 중 내용이 모호(模糊)한 부분은 국정과제 확정 단계에서 더욱더 구체화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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