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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발표한 정례보고서에서 “민간 신용으로 성장을 유발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라고 적시했다. ‘민간 신용’은 금융기관을 제외한 기업, 가계 등 민간 비금융부문의 부채를 의미한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가계·기업부채) 비율이 100%를 웃돌면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꺾이는 ‘역 U자형’ 곡선을 그린다”라며 한국과 중국을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했다. 각국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이라 불리는 BIS에 따르면 2000년대 초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하면서 대부분 신흥국에서 민간 신용이 큰 폭으로 확대됐다고 지적하며, ‘민간 신용’이 증가하는 초기 단계에는 자금조달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서 소비를 늘려 단기적으로는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으면 원리금 상환 부담을 느끼는 가계·기업의 소비·투자를 억제해 성장을 짓누르며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간 신용 급증세 경고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부채 데이터베이스에서도 확인된다. 이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은 281.7%로, 그보다 5년 전인 2017년(238.9%)보다 42.8%포인트 증가했다. 한국은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26개국 중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주범으로 꼽힌 것은 가계부채로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92%에서 지난해 108.1%로 늘어났다며 한국의 민간 부채가 주요 26개국 중 가장 가파르게 늘고 있다고 IMF는 경고한 바 있었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는 2023년 말 BIS 기준 각각 100.5%, 122.3%로 GDP 대비 민간 신용 비율은 총 222.7%에 달했다.
가계 빚이 한국경제 시한폭탄임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민간 부채 상황은 이렇듯 국제기구들이 잇달아 경고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6월 26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2024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GDP 대비 매크로 레버리지(Macro Leverage │ 가계·기업·정부 부채 비율)은 251.3%로 집계됐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말보다 8.6%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세계 평균 부채 비율은 같은 기간 285.4%에서 245.1%로 40.3%포인트나 급감했다. 세계 각국이 고금리 시대를 맞아 과도한 부채를 털어내는 정공법을 쓰고 있을 때 한국만 ‘나 홀로 부채 역주행’의 길을 걷다가 디레버리징(Deleveraging │ 부채 감축)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다수의 선진국들이 코로나19 시기 초저금리에 늘어난 부채 줄이기에 나섰으나 한국은 가계 빚이 되레 느는 역주행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3년 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 광풍(狂風)을 방불케 하는 가계 빚 급증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될 사안이다. 이러한 광풍은 가계 빚 증가에 불을 질렀고 당국의 오락가락·갈팡질팡 규제는 ‘불난 데 부채질’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8월 말 은행의 대출 잔액은 1,130조 원으로 한 달 만에 9조 3,000억 원이나 크게 늘었다. 이는 2021년 7월(9조 7,000억 원) 이후 최대치다. 그중 80%는 20년 만에 최대 폭인 8조 2,000억 원 증가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했다. 결국 주택담보대출 관리가 핵심이라는 결론이다. 정부는 더는 가계 대출 관리에 혼선을 야기(惹起)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그동안 당국은 특례보금자리론·디딤돌대출 등의 정책 대출을 확대한 데다 지난해 말 은행에‘상생 금융’을 압박해 대출 금리를 인하했고, 7월초 시행 예정이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적용을 부동산 시장 위축 우려를 내세우며, 9월 초 시행으로 두 달이나 연기하면서 ‘막차 수요’를 자극했다. 이처럼 금융감독원장의 말 바꾸기로 이어지다가 가계부채가 폭증한 후에는 은행들에 대출 감축을 압박했다. 실수요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한발 물러서는 등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행보를 보였다. 지난 두 달간 “무리한 가계 대출 확대는 안 된다”에서 “대출 금리 인상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로 이어서 “실수요자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라는 왔다 갔다 돌출 발언으로 큰 혼선을 빚었다. 결국 혼란을 빚은 당사자 격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월 10일 전격 사과하고 “필요할 때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의 70~80%를 차지하는 정책 대출 관리도 망설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국토교통부는 정책 대출 유지를 고수하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쪽에서 불을 끄고 다른 쪽에서는 기름을 붓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그동안 단기간에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동산 규제를 손바닥 뒤집듯 완화했던 임시방편 정책들이 이젠 통하지 않음을 직시해야만 한다. 정부는 가계부채 대응을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일관성 있게 부채 관리에 더 적극적으로 서둘러 나서야만 하는 이유이다.
한편 BIS는 가계부채와 주택 수요가 증가하는 동안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업종에서 건설·부동산업으로 신용이 옮겨가는 현상에도 주목했다. 건설·부동산업의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해당 업종에 대한 과도한 대출 쏠림이 성장에 또 다른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어서다. 지금 한국의 가계 빚은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가계 대출 증가와 집값 상승은 서로 영향을 끼치며 악순환하고 있다. “가계 빚 관리 기조는 확고하다”라는 정부의 일관된 의지를 관철해 나갈 컨트롤타워 부활이 급선무다. 이번 달 미국 연준(Fed)이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내리면 한국도 금리 인하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집값 불안이 가중되고 가계부채가 더 악화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가계부채 추이는 앞으로 한 두 달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부는 가계부채 연착륙에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두고 일관성 있는 가계부채 관리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어설픈 관치금융으로는 집값도 가계부채도 잡지 못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집값·가계부채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된 정책 대출을 놓고 국토교통부와 금융 당국이 엇박자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시장 불안을 잠재우려면 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부처 간 긴밀히 정책 공조를 더욱 공고히 견지하면서 고강도 선제 대응에 서둘러 나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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