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빚에 막힌 한국 경제, 오락가락 금융정책에 집값 못 잡고 빚만 키워

편집국 / 기사승인 : 2024-09-06 16:53:04
  • -
  • +
  • 인쇄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올해 2분기 가계 빚이 지난 1분기 대비 13조 8,000억 원 증가한 1,896조 2,000억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2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2/4분기 가계신용(잠정)’ 자료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896조 2,000억 원으로, 1분기 대비 13조 8,000억 원이 늘어났다. 이는 1분기 1,882조 4,000억 원으로 가계신용이 지난해 4분기보다 3조 1,000억 원 감소했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거나 외상으로 물품을 구입한 대금 등을 합한 금액으로 가계 부문에 관한 신용 공급 상황이나 규모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지표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가계 대출 잔액은 1,780조 원으로 전 분기 말 대비 13조 5,000억 원 증가하고, 판매신용 잔액은 116조 2,000억 원으로 3,000억 원 증가했다. 이처럼 금융권 가계 대출 잔액이 1,780조 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은 16조 원 급증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소위 ‘영끌’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 영향이다. 주택담보대출이 1년 사이 60조 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올해 들어 서울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데다 미국발 금리 인하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빚을 내 집을 사는 사람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건설업에 재정 집행을 집중하면서 부동산 경기 부양 신호를 준 것이 주택담보대출 급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가계 부채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다. 게다가 2분기 말 국가부채는 전 분기보다 30조 4,000억 원 늘어난 1,145조 9,000억 원이었다. 2년째 세수 펑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국고채 발행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올해 7월까지 정부의 국고채 발행량은 115조 9,000억 원으로 총 국채 발행 한도의 73.2% 수준이다. 지난 8월 2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국가채무(지방정부 채무 제외)와 가계 빚은 3,042조 1,000억 원을 기록, 처음으로 3,000조 원을 넘겼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 2,401조 원)의 약 1.27배 수준에 육박하고 올해 국가 예산 656조 6,000억 원의 4.63배를 넘는 규모의 금액을 국가와 가계가 빚으로 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은행이 지난 5월 20일 공개한 ‘우리나라 기업부채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부채는 2023년 말 2,734조 원을 기록했다. 이를 어림잡아 계산해도 5,776조 1,000억 원에 달한다.

한편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총부채(지난해 말 기준)는 6,033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51배를 넘는 규모였다. 기업부채가 2,734조 원으로 가장 많았고, 가계(2,246조 원), 정부(1,053조 원) 순이었다. GDP 대비 총부채 비율 269.8%는 주요 20국(G20) 중 5위다. 또한 지난 6월 26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2024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GDP 대비 매크로 레버리지(Macro Leverage │ 가계·기업·정부 부채 비율)은 251.3%로 집계됐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말보다 8.6%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세계 평균 부채비율은 같은 기간 285.4%에서 245.1%로 40.3%포인트나 급감했다. 세계 각국이 고금리 시대를 맞아 과도한 부채를 털어내는 정공법을 쓰고 있을 때 한국만 ‘나 홀로 부채 역주행’의 길을 걷다가 디레버리징(Deleveraging │ 부채 감축)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가계·기업·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동시에 빚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덜 걷힌 세금보다 지출이 큰 정부는 국채를 찍어 빚을 늘려 왔다. 올해 상반기 정부 재정은 103조 4,000억 원 적자였다. 적자가 큰데 연간 예산의 66%를 상반기에 몰아 쓰고 나니 하반기 내수 위축에 대응할 실탄은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삼각(고물가ㆍ고환율ㆍ고금리) 파고인 고금리의 어려움 속에서 가계와 자영업자들의 대출 의존은 계속 커지는 중이다. 정부는 2단계 스트레스 DSR 등을 2개월 연기하면서 ‘막차 수요’를 증가시킨데다가 저금리 정책금융상품 등을 쏟아내면서 ‘빚 권하는’ 정책으로 가계 대출은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폭증하고 있다. 집값, 가계 대출이 불안해지자 한국은행은 지난주 기준금리를 3.5%로 1년 7개월째 동결해야 했다. 코로나19 이후 옥석 가리기 없이 계속 미뤄진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 원리금 상환은 수많은 좀비기업을 낳고 있다. 문제는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대출의 질도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 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304조 7,000억 원으로 올해 들어 57조 원 가까이 불어났다. 기업 대출의 7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개인사업자 포함) 대출 잔액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연초 이후 7개월간 31조 8,000억 원 증가해 1,031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증가 폭은 지난해 같은 기간(28조 1,000억 원)보다 13% 더 늘었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은행의 금융 긴축 기조와 반대로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한다면서 외려 집값을 자극하는 엇박자 정책을 폈다. 저금리 상품인 신생아특례대출·디딤돌대출 등 정책자금 지원을 장려하고,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저금리 주택 정책금융을 연 40조~50조 원씩 공급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정부는 금리 인상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며 은행을 쪼아대며 대출 금리 추가 인상을 막았고, 한국은행도 경기 침체 우려한 나머지 한·미 간 금리 역전을 감수하며 금리 인상 행진을 멈췄다. 그로 인해 부동산 시장에 돈이 계속 쏟아져 들어갔다. 서울 집값은 재차 급등하고, 주택담보대출이 다시 폭증하는 오늘의 상황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집값 폭등세에 당황해진 정부는 9월부터 수도권 지역 주택담보대출은 더 높은 금리를 부과하고, 대출액은 줄이는 대출 규제에 나서기로 하는 등 냉·온탕 정책을 지속 반복하고 있다.

가계 대출의 고삐가 풀린 데에는 정부의 메시지 혼선 책임이 작지 않다. ‘빚의 달콤함’에 너무 오래 빠져 있다 보니 이제는 극약 처방에 가까운 조치 없이는 부채의 덫에 걸려 탈출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미리미리 포트폴리오 관리(Portfolio management │ 투자 계획에서, 위험을 최소화하고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전략)를 실행했어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가계 부채를 줄이려면 금리를 올리고,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빚을 내기 더 어려운 환경을 지속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오락가락 갈팡질팡 금융정책으로 집값은 못 잡고, 가계 부채 문제만 더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의 내수 침체는 가계가 과도한 빚에 쪼들려 소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수 부진에 대한 해결책은 확장 재정과 금리 인하인데 가계와 국가의 빚이 둘 다 빠르게 늘고 있어, 꺼내 들기도 어렵다.

한국 경제를 다시 선순환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계 부채 축소가 절실하다. 정부는 한국은행과의 긴밀한 정책 공조로 고강도 가계 부채 축소 대책을 마련해 일관성 있게 강력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금융당국은 올해 제출한 당초 계획보다 가계 대출을 많이 내준 은행들의 내년 신규대출 규모를 축소하는 ‘대출 총량제’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관치의 실패로 불어난 대출을 통제하기 위해 더 강력한 관치 수단을 투입하겠다는 요량인데. 전방위 대출 통제로 인해 집 투기와 관계없는 대출 실수요자들의 피해도 불가피해진 것을 감안할 것은 물론이고 경기 침체 장기화로 충격이 큰 취약계층과 서민의 안전망 강화와 가계 부채 부담 경감 조치를 통해 내수 활성화에도 힘을 써야 할 것이다. 문제는 한시라도 서둘러 일찍 금리를 내려줘야만 서민, 자영업자를 짓누르는 이자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며칠 새 수조 원씩 가계 대출이 불어나고, 아파트값이 폭등한다면 금리를 내리긴 어렵다. 금융당국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지난주 ‘제롬 파월(Jerome Powell)’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통화정책을 조정할 때가 왔다”라며 오는 9월 기준금리 인하를 예고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캐나다는 이미 6월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일관된 의지와 슬기로운 지혜가 필요한 때다.

 

[저작권자ⓒ 서울세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세계타임즈 구독자 여러분 세계타임즈에서 운영하고 있는 세계타임즈몰 입니다.
※ 세계타임즈몰에서 소사장이 되어서 세계타임즈와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합시다.
※ 구독자 여러분의 후원과 구독이 세계타임즈 지면제작과 방송제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세계타임즈 후원 ARS 정기회원가입 : 1877-0362

세계타임즈 계좌후원 하나은행 : 132-910028-40404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 구독자 여러분의 후원과 구독이 세계타임즈 지면제작과 방송제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세계타임즈 후원 ARS 정기회원가입 : 1877-0362

세계타임즈 계좌후원 하나은행 : 132-910028-40404

후원하기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