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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은 원청 사업주 책임을 확대해 하청업체와 원청업체의 직접교섭을 허용하고 합법적 파업과 관련한 손해배상 책임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사용자의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책임을 강화하는 한편,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자의 삶이 파탄 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인데 이런 입법 취지가 반영된 법원 판단이 이미 나온 바 있고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산업 현장에서 만연한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일상화된 노동권 침해와 산업재해 위험성 증가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최근에는 중대 재해 피해가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입법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를 통해 이득은 취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부당한 관행을 끝내자”라는 노동계 요구에 여론도 우호적으로 보인다.
법안이 통과되면 하도급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원청 사용자도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 게다가 노조 쟁의행위에 과다한 배상 책임을 부과해온 관행을 바로잡는 내용도 담았다. 사용자가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노조와 개별 조합원에게 부담시켜왔는데, 이를 금지토록 한 것이다. 그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손배·가압류를 당한 뒤 가족이 해체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노동자들의 비극이 더는 되풀이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 처리가 노정관계 분수령”이라고 보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사용자의 교섭 대상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정하도록 했는데, 이 경우 원청과의 직접교섭 가능성을 축소해 실질적 노사자치를 훼손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다. 노동쟁의 범위를 제한하고 법 시행을 1년 유예하는 조항도 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2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의 ‘한화오션·현대제철 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 판결문을 보면, 단체교섭권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자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누구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두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강조했다.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 사용자에게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청 노동자는 ‘노동 3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어 헌법상 권리 보장의 공백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라며 법원은 한화오션·현대제철에 하청 노동조합과 단체교섭할 의무가 있다고 본 이유라 판시했다. 법원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판결하는 것이 현재의 ‘입법 공백’을 메우는 것이자,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결은 정부·여당의 노조법 2조 개정 추진의 주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 입법 전에도, 법원은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인정한 판결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경영 안정성과 법적 예측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경영계는 “노사 갈등과 파업을 부추긴다.”라며 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기업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는 불안 심리만 유포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12개 업종별 사용자단체는 3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법 개정안은 ‘파업 만능주의’를 초래해 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킬 것”이라며 국회 심의 중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무늬만 사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용자의 교섭 의무가 명확해지면, 실질적으로 노사 간 소모적 갈등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임금·장시간 노동 속에서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전향적(轉向的)으로 개선되는 전기가 될 수 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경영계는 “기업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는 불안 심리만을 유포하고 있어 안타깝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12개 업종별 사용자단체는 지난 7월 3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개정안은 ‘파업 만능주의’를 초래해 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킬 것”이라며 국회 심의 중단을 촉구했다. 지난 7월 28일에는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가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철수할 수 있다”라는 입장을 냈는데, 이 역시 경총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또한, 7월 30일에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KOREA)도 “한국의 경영 환경과 투자 매력도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우려한다.”라고 밝혔다. 이들의 반대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은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기업이 수백 개의 하청 노조와 1년 내내 교섭을 벌여야 한다.”라는 것과 다음으로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면책권을 줘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왜곡·조장되고 있다. 우선 수백 개의 하청 노조가 전부 제각기 교섭을 요청해서 산업 현장이 혼란에 휩싸일 것이란 기우와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 정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원·하청 교섭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조만간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조 활동이라고 해서 무조건 면책권을 주자는 것도 아니다. 불법행위에 대해선 조합원의 지위와 역할, 관여 정도 등을 고려해 형평에 맞게 손해배상 책임 비율을 정한다고 한다. 그간 노조가 ‘교섭할 사용자 찾기’에 나서다 갈등만 커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섭 책임을 강화한 ‘노란봉투법’이 오히려 노사 간 분쟁을 줄일 것이라는 기대도 커 보인다. 경영계는 더는 소모적 공방을 벌이지 말고 ‘노란봉투법’ 공포 이후의 새로운 노사관계 틀을 재정립하는 데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것이 오히려 순리이자 첩경(捷徑)임을 각별 유념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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