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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1,300원대 초반이었던 환율은 상승세를 지속해 지난해 11월 1,400원 근처까지 오르다 지난해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자 환율은 급등세를 보이며 1,450원을 뚫고 올라갔다. 4월 9일 1,481.1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차차 안정되기 시작해 6월 30일에는 1,350원까지 하락한다. 하지만 이후 다시 올라가기 시작해 어느새 1,470원에 육박하고 있다.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선 것은 1997~1998년 외환위기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 두 번밖에 없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으로 정치적 비상 상황이 해소됐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1,450원을 웃도는 환율이 계속되고 있고 11월 13일 22시 07분 매매 기준율 기준 1,467.00원에 달하고 있다.
원화 가치 약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주요 6개 통화(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스털링,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대비 미국 달러 가치를 산출하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해 고점보다 밑이라 달러가 강세 기조라고 볼 수 없는데도 원화는 줄곧 달러 대비 유독 약세다. 전날 한국은행의 구두 개입이 하루 만에 약발을 다한 것도 원화 약세가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방증(傍證) 중 하나로 읽힌다. 최근 환율 상승에는 엔화 약세, 외국인의 주식·채권 매도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미 관세 협상 결과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를 해마다 200억 달러씩 하기로 한 것이 압박 요인이다. 무엇보다 높아지는 통상 장벽을 피하기 위한 수출기업이 대금을 송금하지 않고 해외에 예치하거나 재투자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금융상품 투자가 증가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 11월 12일까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269억 5,740만 달러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74억 3,707만 달러에 비해 3.6배나 늘어난 것이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미국 주식투자를 위해 고스란히 빠져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각종 연기금과 개인 투자자의 해외 투자가 늘어나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친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면서 지난 정부 내내 경제와 민생을 짓눌렀던 3고(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악몽이 반복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환율은 국가 신인도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자재·에너지 수입단가가 오르고 생산비·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환율은 국가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의 총합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문제로 보아선 안 된다. 환율 급등(원화 가치 급락)은 그 자체로 경제 불안 요인이면서 경제 전반에 걸쳐 큰 부담을 준다. 각 경제 주체의 불안심리를 키울 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식자재 등 수입 물가가 뛸 수밖에 없고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불안으로 이어진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에도 걸림돌로 작용해 통화정책을 제약한다.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인 43일간 이어진 연방정부 ‘셧다운(Shut down │ 일시적 업무정지)’이 지난 11월 12일(현지 시각) 공식 종료된 가운데 엔화 약세, 거주자 해외투자 급증 등이 맞물리면서 원화값 하락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화값 하락이 더 가팔라지는 경우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Foreign Exchange Hedge)’나 외환 당국의 개입 등이 이뤄질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무엇보다도 더욱더 심각한 것은 달러뿐 아니라 유로화, 위안화, 스위스 프랑화 등 주요 통화 전반에 걸친 전방위 원화 약세다. 1유로당 1,700원, 1위안당 200원 선이 차례로 무너졌다. 대표적 안전 자산인 스위스 프랑화에 대해선 1,841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원화 약세는 강 달러·엔화 약세에다 해외 주식투자 급증 같은 수급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서학 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역대 최대인 68억 5,499만 달러로, 같은 달 무역수지 흑자 60억 5,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11월 들어서도 미 주식 순매수는 23억 달러를 웃돌고 있다. 여기에 대미(對美) 투자 펀드 2,000억 달러의 조달 불투명성도 환율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원·위안 환율이 207원까지 치솟은 것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구조적 위험 신호로 봐야 한다. 원·위안 환율은 2009년 이후 170∼180원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였는데, 지금은 2022년 중국의 코로나 봉쇄 때 200원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중국에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기술 경쟁력까지 밀리고 있다는 위험한 경보음과 다름없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세계 외화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56.32%를 기록했다. 1995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3월 말 57.79%였는데 불과 석 달 만에 1.47%포인트나 급감했다. 1995년 59%에 달하던 비중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데 그 속도도 빠르다.
환율은 경기·물가·금리·수출입 등 경제 전반의 흐름이 응축된 ‘경제의 체온계’다. 최근 원화 약세에는 1%대 저성장과 급격한 고령화, 지난 2분기 말 기준 1,953조 원에 달하는 과다한 가계부채, 대미 무역 갈등 등 구조적 취약성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미 후폭풍은 현실화하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에도 국내 석유류 제품 가격이 올라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4%로 밀어 올렸다. 환차손을 피해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 코스피 주식을 7조 7,000억 원 이상 순매도했다. 한국 국채도 대량으로 매도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3.2%대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다. 지금은 경제 펀더멘털을 복원할 구조 개혁을 서두를 때다.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매출 86조 1,000억 원, 영업이익 12조 2,000억 원을 기록하며 직전 분기 대비 15% 성장했고, SK하이닉스는 매출 24조 4,489억 원, 영업이익 11조 3,834억 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반도체 슈퍼호황으로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3.6% 증가한 595억 7,000만 달러, 수입은 1.5% 감소한 535억 2,000만 달러로 무역수지는 60억 6,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 16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며, 1~10월 누적 무역흑자는 564억 3,000만 달러로, 지난해 전체 흑자 규모(518억 4,000만 달러)를 이미 넘어선 지금이 환율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골든타임(Golden-time)’이다.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필수품 가격과 공공요금 등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서민과 저소득·연금 생활자들 생계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는 내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수출기업도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방치하면 해외 투자 증가와 내수 경제 약화의 악순환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이런 추세를 막기 위해선 우선 단기적 대책으로 원화 급락 시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 재정·통화·금융 당국이 한목소리로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시장에 긴장감을 고조시켜야 한다. 더불어 수출기업에 대한 외환 헤지(Hedge) 한도 확대 등으로 달러 유입을 늘려야만 한다. 다음 중·장기적 대책으로는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자금을 국내로 되돌리기 위한 각종 정책 지원 확대와 개인 투자자의 해외 투자 때 원화를 달러로 바꾸지 않아도 되는 외환 헤지 금융상품 개발 등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물론 전 세계 투자금이 몰려들도록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와 투자 환경 개선에도 가일층 속도를 내야 한다. 고환율로 물가가 오르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도 어려워지고, 내수 위축과 기업 채산성 악화로 이어진다.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환율 상승으로 원유 수입 가격이 올라 난방유 가격도 상승세다. 정부와 당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물가와 민생 악화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를 바란다.
특히 원·달러 환율 상승은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총자산 대비 위험가중자산 비중)이 떨어지게 된다. 은행이 기업에 대출해 준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증가(위험가중자산 금액 증가)하고 외환 파생 거래에서 신용위험이 확대되면서 신용 위험가중자산(RWA)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내 일반은행의 전체 위험가중자산 중에서 외화 위험가중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9월 말 기준 22.6% 정도이다. 은행들은 자본 비율을 맞춰야만 하기에 당연히 기업·가계 대출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또한 원자재나 중간재를 수입해야 하는 기업들에 타격을 주게 되고, 수입 물가를 올려 소비자들의 부담도 키운다. 원화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채권 투자도 위축시킨다. 따라서 외환 당국은 환율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환율이 과도한 변동성을 보일 때 적절한 개입을 통해 시장을 안정시켜야만 한다. 원화 약세가 고착화(固着化)하고 있는 건 아닌지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다면 이에 대한 구조적인 근본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는 지혜를 모을 필요도 있어 보일 뿐만 아니라 규제 개혁을 통한 기업 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는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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