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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5대 은행(국민·하나·신한·우리·농협)의 기업 대출 잔액은 811조 3,481억 원으로 지난해 말 767조 3,139억 원 대비 5.74%인 44조 342억 원이나 늘었다. 정부가 가계대출을 억제하자 은행권이 ‘기업대출’로 방향을 선회한 결과다. 5대 은행의 기업대출은 지난해 한 해 동안 60조 원가량 늘었는데, 올해는 반년 만에 전년도 전체 규모의 73.9%에 달했다. 기업대출 증가 폭은 1분기보다 2분기에 더 커진 상태다. 1분기 기준 기업대출 증가 폭은 지난해 4분기 말 767조 3,139억 원에서 올해 1분기 말 785조 1,515억 원으로 17조 8,376억 원이었는데, 2분기 기업대출 증가 폭은 26조 1,966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7월 1일 발표한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상호금융업권(농협·수협·산림조합·신협·새마을금고) 가계대출은 8조 9,000억 원 감소한 데 반면 기업대출은 4조 2,000억 원 증가했다. 문제는 고금리에 부동산 경기 침체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업대출 건전성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호금융업권의 올해 1분기 말 총 대출 연체율은 5.1%로, 금리 인상 전인 2020년 말 1.7%보다 3.4%포인트 뛰었다.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 채권 비중(고정이하여신비율) 또한 같은 기간 가계대출이 1.71%에서 2.16%로 커진 데 그쳤는데 반면 기업대출은 2.98%에서 7.21%로 4.23%포인트나 급상승했다. 또 한국은행이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상호금융업권 복원력을 점검한 결과, 거시경제충격에 취약한 조합 중 기업대출 비중이 높은 조합일수록 자산 건전성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석 결과 기업부채에 대한 경고음이 날로 커지는 상황이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서도 지난해 3분기 기준 세계 34개 국가(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한국이 126.1%로 1위 홍콩 267.9%와 2위 중국 166.9%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1년간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 증가 속도 역시 한국은 120.4%에서 126.1%로 5.7%포인트 빨라져 1위 러시아(68.2→81.6% │ 13.4%포인트)와 2위 중국(158.3→166.9% │ 8.6%포인트) 다음으로 세 번째로 빨랐다. 지난해 10월까지의 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핀란드·벨기에·스페인·스웨덴·덴마크·튀르키예·캐나다·일본·오스트레일리아·싱가포르·남아프리카공화국이 등 주요 17개국 기업 대상 부도 증가율 조사에서도 우리나라는 약 40%로 네덜란드(약 60%)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게다가 1분기 말 기준 기업대출 연체율도 2.31%로 지난해 3분기 말 대비 0.59% 포인트 증가했다. 기업부채 리스크가 금융시스템 불안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해졌다.
하반기 은행권의 기업대출 전략이 은행별로 다소 엇갈릴 전망이다. 당국의 가계대출 압박에 은행들이 일제히 기업대출 확장에 나서 ‘출혈 경쟁’으로 번지자 하나은행은 수익성 확보를 위한 속도 조절에 나섰는데 반면 국민은행은 14조 원을 본부 특별 금리승인제도 등에 투입하며 기업금융에 집중할 전망이다. 그러나 고금리 장기화로 기업 수익성이 악화하고 이자 부담이 가중된 가운데 은행권이 대출 경쟁에서 대부분 시중은행이 발을 빼면서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돈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앞서 한국은행도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실적이 부진한 일부 기업들의 이자 상환능력이 크게 약화한 점은 향후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한파를 겪는 석유화학, 부동산 경기 침체에 흔들리는 건설 부문과 건축자재 업종 등에 비상이 걸릴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과정에서 옥석 가리기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으면서도 빚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 이른바 좀비기업은 과감하게 솎아내야 하겠지만 회생 가능성이 있음에도 일시적 자금 상환 부담에 몰린 기업은 적시에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구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대출을 줄여 신용 경색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 유의해야 한다. 레고랜드 사태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금융시장이 불안하면 작은 도화선이 자금시장 전체를 경색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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