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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분기별 자영업자·가계대출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권 사업자 대출 연체액(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은 모두 10조 8,000억 원에 이른다. 이번 연체액 통계는 금융기관들이 제출한 업무보고서에 기재된 실제 연체액 현황을 합산한 결과로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연체 규모다. 지난해 4분기 말 8조 4,000억 원과 비교해 불과 석 달 사이 2조 4,000억 원 늘어나면서 자영업자 전체 금융권 사업자 대출 연체율도 작년 4분기 1.30%에서 올해 1분기 1.66%로 석 달 사이 0.33%포인트나 치솟았다 2013년 1분기 1.79%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앞서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사업자대출 + 가계대출)이 1,056조 원에 달하는데, 다중 채무자이면서 저소득인 취약 자영업자의 경우 대출금 연체율이 10.21%까지 치솟았다. 3개월 이상 연체한 자영업자 대출액이 31조 원에 이른다. 1년 새 무려 53%나 급증했다. 대출금 상환 기간을 연장해 준다고 이들이 빚을 갚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올해 소매 판매가 전년 대비 2.3%나 감소하는 등 내수 침체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보증기관인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대신 갚은 대위 변제액도 올해 1~5월 1조 29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74.1% 급증했다. 1~5월 ‘폐업’ 사유로 소상공인에게 지급한‘노란우산 폐업 공제금’도 6,57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3% 늘었다.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은 2020년 7,300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1조 2,600억 원으로 5,300억 원이나 급증했다. 소기업 소상공인들의 45.0%가 5억 원 미만의 대출 원리금 상환마저 경영 부담이 된다는 지난 7월 1일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도 이를 방증(傍證)한다. 소매판매액 지수 등 내수 경기 지표도 계속 나빠지고 있어, 사태가 갈수록 심각성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3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1∼5월 재화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액지수(불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감소했다.
한편, 가계대출자들의 대출 상환 부담도 통계상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1분기 말 현재 1,973만 명이 총 1,852조 8,000억 원의 가계대출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1인당 평균 9,389만 원씩 금융권 대출을 안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해 대출자 수는 1,979만 명에서 1,973만 명으로 0.303%인 6만 명이나 줄었고, 대출 잔액은 1,853조 3,000억 원에서 1,852조 8,000억 원으로 0.026%인 5,000억 원이 줄었지만, 1인당 대출액은 9,367만 원에서 9,389만 원으로 0.023%인 22만 원이나 늘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중순 “자영업자에 대한 맞춤형 지원 방안을 7월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6월 30일 고위당정협의회를 열어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민생회복지원금’ 지원 방안이 ‘심각한 재정 부담을 야기하면서도 정책 효과가 낮다’라고 지적하며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에 정부가 영세음식점 배달비 신규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전기료 지원 대상을 최대 50만 명 늘리며, ‘착한 임대인 세액공제 지원 기간 1년 연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영업자들이 체감할 수 있을 만한 지원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라 생각이 든다. 정책자금과 보증부 대출의 상환 기간을 대폭 연장하고, “대환대출 대상을 중저신용 차주까지 확대하겠다”라고 밝혔는데 ‘자영업 위기’의 추세를 돌이킬 방안으로는 미흡하다.
한국은행 역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새출발기금 등을 통한 채무 재조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한 바 있다. ‘새출발기금’은 자영업자 채무조정을 목적으로 2022년 10월에 도입했다. 원금을 감면하거나 금리·상환 일정을 조정한다. 그러나 실적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애초 30조 원의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기금에 3조 6,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나 지난해까지 1조 3,000억 원 지원에 그쳤고, 올해 예산도 금융위원회가 올린 7,600억 원에서 절반 넘게 깎고 3,300억 원만 편성했다. 하지만 출자금을 확충하고 지원 자격을 넓혀야만 기금을 활성화할 수 있다. 채무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자력 회생 가능성이 낮은 연체자에 대한 채무 재조정이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빚을 갚기 어려워진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원금 감면과 저리 분할 상환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인 만큼 지원 규모, 대상을 확대하려면 기금의 자본금부터 늘려야 한다. 따라서 채무 재조정을 위한 ‘새출발기금’을 대폭 확대하고 신청 요건도 완화해야 마땅하다. 정부가 돈이 없어 그것마저도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또한 정책자금 및 보증부대출 상환 기간을 연장하고 기존 대출금을 저금리로 바꿔주는 ‘대환대출’을 확대하면 해당 소상공인에게 단비가 될 것이 분명하다. 월 20만 원의 전기요금 지원 대상도 연 매출 6,000만 원 이하까지 확대하면 50만 명이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영세한 음식점을 위해 배달비 지원 방안도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부동산 PF 구조조정을 앞둔 금융시장 안정에 모든 역량을 총 집주(集注)하여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은행의 동반 부실로 확산하지 않도록 선제적 조처가 필요하다. 통계청이 지난 6월 28일 발표한 ‘2024년 5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생산지수가 전월보다 0.7% 감소하고, 소매 판매는 0.2% 줄어들었으며, 설비투자마저 4.1% 줄어드는 등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뒷걸음질 친 데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 소득 및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복원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년 9월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차례에 걸쳐 미뤄왔던 빚 폭탄 청구서가 돌아온다. 70조 원 이상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만기 연장이 끝난다. 지금도 자영업자 연체 상황이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70조 원은 우리나라 전체 가계대출 1,852조 8,000억 원에 비하면 큰 규모는 아니겠지만 내수 침체나 상가 공실률에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KB경영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7.3%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후 소비가 백화점이나 무점포 소매업을 중심으로 회복하면서, 대형 마트·수퍼마켓·편의점·전문 소매업 등을 통한 소비가 하락하는 등 업종 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당분간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연체율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경기가 눈에 띌 만큼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1,900조 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인데, 정부는 부동산 연착륙과 가계부채 억제라는 엇갈린 목표 앞에서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모순된 정책 과제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현재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위기는 내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고물가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상황에서 제아무리 금융지원을 쏟아부은들 결국엔 ‘동족방뇨(凍足放尿 │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뿐이다. 특단의 내수 진작책만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눈물을 닦아줄 최선의 대책임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또한 경제회복을 위한 ‘자본시장 밸류업’에 본격적 시동을 건 정부의 노력이 민생현장에 전달될 수 있도록 정치권도 여야를 떠나 적극적으로 지원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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