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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살얼음판을 걷는 위기 상황에서도 경제 낙관론과 폭망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수출 호조·물가 안정’ vs ‘내수 침체·세수 부족'의 명암이 극명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9월 9일 국회 대정부 질의 첫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경제성장률을 두고 설전을 벌인 것을 비롯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한국경제와의 사설에서의 대립적 시각도 날카로웠다. 정책은 타이밍이고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특히 추석 연휴를 전후에 민생의 위기 상황을 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지만 여러 통계치의 지표를 아전인수격으로 유리하게만 해석하고 보기 좋게만 포장해 논리를 펼치고 우격다짐하는 모양새는 국민 눈높이에 결단코 맞지 않아 보인다.
우선 경제낙관론 적 시각으로 한국은행이 지난 9월 11일 내놓은 주요 외감 기업(외부감사대상 2만 3,137개 법인기업) ‘2024년 2/4분기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매출과 이익이 늘고 부채는 줄어 성장성·수익성·안정성이 모두 개선됐다라는 논조다. 먼저 성장성은 올 2/4분기 외감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이 5.3%로 전분기(1.2%), 전년 같은 분기(-4.3%)를 크게 앞질렀고, 총자산증가율도 1.4%로 전년 같은 분기(1.1%) 대비 상승했다. 또한 수익성은 매출액영업이익률이 6.2%로 전년 같은 분기(3.6%) 대비 상승했고, ‘매출액 세전 순이익률’도 6.7%로 전년 같은 분기(6.0%) 대비 상승했다. 게다가 안정성도 부채비율은 88.9%로 전 분기(92.1%) 대비 하락했고, ‘차입금 의존도’ 역시 25.2%로 전 분기(25.7%) 대비 하락했다. 이익이 늘면서 자본이 확충되는 선순환 양상이란 주장이다.
이외에도 수출이 특히 든든한 버팀목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9월 1일 발표한 ‘2024년 8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4% 증가한 579억 달러, 수입은 6% 증가한 540억 7,000만 달러였다. 이로써 무역수지는 38억 3,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해 15개월 연속 흑자와 11개월 연속 수출 플러스(+) 흐름을 이어갔다. 걱정한 대중국 수출도 6개월 연속 100억 달러를 웃돌며 본궤도에 진입했다. 지난달 고용률(63.2%)과 경제활동참가율(64.4%)은 역대 최고, 실업률(1.9%)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고공비행 중이란 주장이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 13일 발표한 ‘2024년 9월 최근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 안정세가 확대되는 가운데, 견조(堅調)한 수출·제조업 중심 경기 회복 흐름이 지속되고 있으며, 설비투자·서비스업 중심 완만한 내수 회복 조짐 속에 부문별 속도 차가 존재한다”라고 진단했다. 기재부는 지난 5월부터 다섯 달 연속 ‘내수 회복 조짐’이라고 강조했다. 백화점·마트 등의 카드 승인액, 자동차 내수 판매량 등이 늘어난 것을 근거로 내수가 완만하게 회복되는 조짐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각종 지표나 다른 기관의 경기 진단은 내수 부진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내수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책 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KDI)의 경기 진단과 차이가 난다. KDI의 진단은 좀 더 냉철하다. KDI는 지난 9월 9일 발간한 ‘9월 경제 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기조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경기 개선이 제약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수출 호조에도 소매 판매와 건설 투자 부진이 지속하는 등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다.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는 것과는 달리 소매 판매와 건설 투자의 부진이 지속되는 등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KDI의 분석이다. 대표적 내수 지표인 소매판매액 지수가 역대 최장인 16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내수 부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소매 판매와 건설 투자가 부진한 데다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며 내수 적신호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지난 7월 상품 소비를 반영하는 소매 판매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2.1% 줄었고, 전월 대비(계절조정 기준)로도 1.9% 감소했다. 또 다른 내수 지표인 건설 투자도 5.3% 감소했다. 7월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18.5% 늘었지만, KDI는 “이는 운송장비 급증, 기저효과, 조업일수 확대에 기인한 것”이라며 반짝 투자 확대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설비투자가 회복 추세로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또한, 8월 수출은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11.4%나 증가했다. 이는 내수 개선 조짐이 있다고 보는 정부 평가와 반대된다. 수출 온기가 내수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방증(傍證)인 셈이다. KDI는 개인사업자 연체율이 상승세를 지속하는 등 부채 상환 부담도 증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6월 개인사업자 연체율이 3개월 이동 평균 0.61%에서 0.62%로 상승 흐름을 보인다”라며 “고금리 기조에 따른 내수 부진으로 개인사업자의 부채 상환 부담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했다. 기재부가 “부문별 속도 차가 존재한다”라는 표현을 새로 넣은 것도 이런 현상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에 실질소득 정체, 가계 부채 부담, 고물가 여파 등이 겹치면서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KDI는 지난달 내수시장 부진이 경기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전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낮은 2.5%로 제시하기도 했다. 기재부가 지난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한 성장률 2.6%보다 낮다.
정부의 경제 상황 판단은 한국은행과도 엇박자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9월 12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 발표 뒤 기자설명회에서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를 인하할 경우, (가계 부채와 관련한)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들이 분명한 효과를 내는 상황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애써 신중론을 폈다. “집값 상승세가 단기간에 꺾일 가능성은 작다”라며 계속 경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집값 및 가계 부채 급증세가 꺾이지 않으면 10월에도 금리 인하가 어려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물가가 2%대 초반으로 내려가자 지난 6월부터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가 가능한 환경”이라며 한국은행을 압박해왔다. 한은이 지난 8월에도 금리를 내리지 않고 동결하자 대통령실은 “아쉬움이 있다”라며 이례적으로 입장을 냈다.
그렇지만 한은의 입장은 단호하다. 금리 정책은 경제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쪽에서 효과가 있어도 다른 쪽에서는 부작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리를 낮추면 부진한 내수를 살리는 데 도움 된다는 것은 알지만 선뜻 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지금 우리 경제에 훨씬 심각한 위험 요인은 다름 아닌 가계 부채 급증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2/4분기 가계신용(잠정)’ 자료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896조 2,000억 원으로, 1분기 대비 13조 8,000억 원이 늘어났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았거나 외상으로 물품을 구입한 대금 등을 합한 금액으로 가계 부문에 관한 신용 공급 상황이나 규모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지표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가계 대출 잔액은 1,780조 원으로 전 분기 말 대비 13조 5,000억 원 증가하고, 판매신용 잔액은 116조 2,000억 원으로 3,000억 원 증가했다.
통상적으로 내수가 회복되려면 무엇보다 가계의 실질소득이 증가해야 한다. 하지만 올 2분기 우리나라 가구의 실질소득(약 435만 3,000원)은 두 해 전인 2022년 2분기(449만 4,000원)보다도 줄어든 상태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 가계의 월평균 실질소득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인 0.8% 찔끔 증가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29일 발표한 ‘2024년 2/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을 보면, 올해 2분기 우리나라 1인 이상 전국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96만 1,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5% 증가했다. 문제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가계 실질소득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8% 증가하는 데 그쳐서 지난해 2분기부터 5분기째 감소하거나 제자리걸음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안타깝다. 가계 실질소득은 지난해 2분기에 3.9% 감소한 바 있다. 크게 줄어든 실질소득이 회복되지 못하고 정체하는 모양새다. 가계 실질소득은 지난해 3분기 0.2% 상승한 데 이어 지난해 4분기에도 0.5% 소폭 상승했으나 올해 1분기에 다시 1.6% 줄어든 바 있다. 5분기째 가계의 구매력이 정체하거나 줄어든 셈이다. 가구소득은 근로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이전소득·비경상소득이 포함된 소득을 일컫는다. 말로만 ‘내수 회복 조짐’을 외쳐댈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계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정부의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경제는 심리라는 측면에서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심리적 기대감을 주는 것은 좋다. 정부의 경제 낙관론이 지나치거나 성과에만 집착해 조급하면 되레 경제 회복을 저해하고 정부 신뢰만 떨어뜨릴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억지 낙관론이 아니라 실제 내수를 살릴 수 있는 정부 대책이다. 지난 8월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수출, 성장률 등을 언급하며 “과거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 눈앞의 현실이 된 것”이라고 ‘블록버스터급’이라는 외신 표현까지 동원해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다”라고 했는데 바로 다음 날 통계청이 7월 산업생산이 전달보다 0.4% 감소해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고 발표했다. 광공업 생산은 전달보다 3.6% 줄면서 19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길어지는 내수 부진 때문에 도소매업은 8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라는 나쁜 경제 지표가 발표돼 대통령 말이 하루 만에 무색해졌다. 경제 정책의 첫 단추는 당연히 냉정한 현실 인식이어야만 한다. 경영학의 구루(Guru)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라고 했다. 실시간 상황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경제 지표는 엄중하고 신중하게 이해하고 관리해야 한다. 모든 경제 정책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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