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커지는 ‘전기차 포비아’, 공포 잠재울 특단 대책 서둘러 강구를

편집국 / 기사승인 : 2024-08-14 13: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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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지난 8월 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서 있던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에서 난 불이 촉발한 ‘전기차 포비아(Phobia 공포증)’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월 6일 충남 금산군에서도 충전 중이던 기아 전기차에서 불이 나는 등 잇단 전기차 화재로 일부 아파트에서는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출입을 금지하거나 출입하더라도 ‘불이 나면 책임진다’라는 각서까지 요구하는 등 주차장 진입을 제한하는 사실상 ‘전기차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가 확산하면서 전기차 차주들 사이에서는 “전기차를 타면 죄인이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등 주민 간 갈등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이렇듯 전기차 화재 파장이 전기차 구매 취소가 꼬리를 물고 중고차 시장에 전기차 매물이 쏟아지는 등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번지는 양상이다. 게다가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마이배터리’에 등록된 전기차 대수가 이달 들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13일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마이배터리가 도입된 지난해 11월 말 이후 전날 오후 3시까지 배터리 정보를 등록한 전기차 대수는 345대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85.6%에 달하는 295대가 이달 들어 등록됐다. 마이배터리는 전기차 소유자가 배터리 정보(식별번호)를 온라인에 자율적으로 등록하도록 한 서비스로, 등록 정보는 차량 화재 시 조사기관에 제공돼 조사기간 단축과 제작결함 조사 등에 활용된다. 특히 지난해 11월 서비스 도입 이후 첫 8개월의 누적 등록 건수의 6배가 최근 열흘 사이 등록됐다.

현재로서는 전기차 배터리 화재에 대한 쾌도난마(快刀亂麻)식의 비책(祕策)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방치(放置)하고 방기(放棄)하면 국민 불안과 마찰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우려가 큰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정부는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전기자동차에 탑재된 배터리 정보를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공개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또 전기차 특별 무상점검을 실시하는 한편 아파트 등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에 대해 긴급 점검도 실시하기로 했다. 국무조정실은 8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부처 차관급 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내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정보는 비공개 사항이지만 최근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른 데다 전기차 소유주와 인근 주민들 간의 갈등이 커지자 8월 12일 기아와 BMW에 이어 8월 13일에는 현대차와 메르세데스-벤츠가 각각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공개했다. 현대차와 메르세데스-벤츠는 무상 점검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다른 기업들에도 배터리 정보 공개를 권고하고 나서면서, KG모빌리티, 르노, 볼보, 폴스타는 이날부터 자사 홈페이지, 유선 안내 등을 통해 기존 판매된 차종은 물론 판매 중인 차종의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했고, 포르쉐, 스텔란티스, 재규어랜드로버도 이달 중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한다. 전기차 무상 특별 안전점검은 현대·기아차 및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난 8월 13일부터 실시했다. 볼보는 8월 19일부터, 테슬라, BMW, 르노, KG모빌리티는 8월 중 실시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아우디 포함)은 연중 상시 무상 점검을 진행 중이다. GM, 포르쉐, 폴스타, 스텔란티스, 재규어랜드로버 등 5개 사는 특별 안전점검을 시행하되, 구체적인 일정은 추후 안내할 예정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와 국토교통부, 환경부의 무공해차 통합누리집 등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 누적 대수는 60만6,610대다. 2017년의 전기차 등록 대수는 2만 5,108대였는데 7년 만에 24배가량 급성장한 것이다. 전기차 등록 대수가 많아지면서 전기차 화재도 매년 늘고 있다. 전기차 등록 대수 증가에 편승해 전기차 화재도 매년 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161건이나 된다. 지난 2017년 단 1건에 불과했던 전기자동차 화재가 2018년 3건, 2019년 7건,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에는 72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서도 5월 말까지 27건의 전기차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쳐 이를 합하면 지난 8년간 무려 188건의 전기차 화재로 14명이 다치고 총 39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도 무려 10건이나 돼 작년까지 7년간 총 21건이다.

지금 같은 전기차 공포는 안전보다 보급 확대에 무게를 실어 온 정부 정책과 무관치 않다.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전기차 누적 대수는 60만 6,610대에 이른다. 그런데도 전기차 화재나 배터리 안전에 대한 대비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시 화재 대응을 위한 소방시설 규정조차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과충전이 문제라고 보고 배터리를 90% 이상 채운 전기차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 진입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밝힌 전기차 소유주의 희망에 따라 90% 충전량을 ‘디폴트(Default │ 기본값)’로 제공하겠다는 방안 등은 임시방편식 미봉책이자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보다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근본적인 진단과 대책이 필요하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다고 화재까지 막을 수 있는 건 아닌 만큼 과학적인 예방 대책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우선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과충전’을 막기 위해 충전율을 제한하는 게 필요하다. 전기차 제조사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90%까지만 충전되게 설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과충전 방지 장치가 없는 충전기가 많다는 건 풀어야 할 숙제이자 현안 과제다. 전기차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일단 불이 붙으면 더 많은 열을 만드는 ‘열폭주(TR │ Thermal runaway)’가 순식간에 일어나 일반 소화기론 끌 수 없다. 따라서 화재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다. 전기차는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온도가 800∼1,000도까지 치솟아 진압이 어렵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층고(層高)가 낮고, 차들이 밀집한 비좁은 공간인데다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다.

벤츠코리아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인천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 EQE 350은 중국 업체 파라시스(Farasis Energy) 배터리를 탑재했다. 파라시스는 동일 업계 세계 10위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벤츠코리아가 공개한 차종 16개 중 13개에 CATL, 파라시스 등 중국 업체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성능 차량인 AMG EQE 53 4MATIC, EQE 350 4MATIC, EQE 500 4MATIC SUV, EQS 350에도 파라시스 제품이 장착됐다고 한다. 벤츠는 이보다 상위 모델인 EQS 450, EQS 450 4MATIC, EQS 53 4MATIC, EQS 450 4MATIC SUV, EQS 580 4MATIC SUV, 마이바흐 EQS 680 SUV에는 세계 1위 업체인 중국 CATL 배터리를 사용했다. 상대적으로 차량 가격이 비싸거나 안전을 좀 더 강조하는 고급 모델에는 배터리 부문 글로벌 1위 업체인 CATL 배터리를 탑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가 직접적인 전기차 화재 예방책이 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전기차의 생명은 배터리에 있다는 전제하에 ‘소비자 안전’과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수입차 제조사가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 공개할 필요가 있다. 화재위험을 낮춘 배터리 및 관련 기술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제조사 정보 공개 외에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정보가 더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가 전기차 과충전 방지를 위해 전력선통신(PLC) 모뎀 부착 완속 충전기의 보급에 나선 것은 올 초부터이고, 정부가 보증하는 배터리 인증제는 내년 2월께나 시행된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전기차 화재 예방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우면서도 배터리 산업의 혁신을 촉진해야 할 시점이다. 더구나 지나친 과잉 대응으로 전기차 공포를 조장해서도,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아서도 결단코 안 될 일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전기차 전환은 가야 할 길이자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다. 그동안 정부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었지만, 정녕 안전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는 소홀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안전 확보의 계기로 삼는다면 위기(危機)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위기(危機)’는 ‘위대(偉大)한 기회(機會)의 줄임말’인 ‘위기(偉機)’이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정부가 신축 건물에 대해 충전기 설치를 지하 3층까지 허용한 점이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전기차 충전 기반 시설 확충 및 안전 강화 방안」을 통해 새로 건축허가를 받는 건물은 지하 3층까지만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게 하기로 하고 작년 11월 「한국전기설비규정」을 개정하여 이를 시행했다. 하지만 인천 화재를 일으켰던 전기차가 지하 1층에 주차되어 있었고 충전 중도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하 3층 주차장까지 충전시설 설치를 허용한다는 건 전기차 화재의 위험성과 진압의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하 주차장에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고 화재 시 발생한 농연 배출이 어려운 점을 생각하여 충전시설 지상 설치를 유도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대응 매뉴얼과 시스템 개선에 서둘러 나서고 전기차 소유자들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소화 덮개나 소화수조와 같은 진압 장비를 서둘러 개발하여 보급하고 주차공간의 지상화, 격리 방화벽 설치 등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 배터리 기업은 철저한 품질 관리와 안전 검증을 하면서 화재에 강한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 과학기술계가 실질적인 전기차 화재 방지책은 물론 지속 가능한 전기차 산업 성장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건 전기차 화재의 원인을 확실하게 규명하는 작업이다. 왜 불이 나는지를 알아야만 어떤 처방이라도 실효성을 갖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률로 정한 ‘PL(Product Liability) 법(法)’의 입법 취지를 살려 전기차 개발과정과 리튬이온 베터리 제조과정에서 쌓인 기술정보와 축적된 노하우(Know-how)가 녹아 들어간 소화 및 진압대책이 첩경(捷徑)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전기차 업계는 소비자들이 지나친 불안을 걷어낼 수 있도록 촘촘하고 완벽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허술하고 어설픈 대책으로는 소비자 불안을 해소할 수 없고, 이는 전기차 시장의 위축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내수 기반이 무너지면 국내 전기차 업계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데 큰 차질을 빚을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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