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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지난 7월 10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예금은행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15조 5,000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 원 늘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해 3월(-1조 7,000억 원) 1년 만에 잠시 뒷걸음쳤다가 지난 4월(+5조 원) 반등한 뒤 석 달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증가 폭도 지난해 10월(+6조 7,000억 원) 이후 7개월 만에 최대였던 지난 5월(+6조 원) 수준이 두 달째 유지됐다. 가계대출 종류별로는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876조 9,000억 원)이 6조 3,000억 원 늘었고,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237조 4,000억 원)은 3,000억 원 줄었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자 시한폭탄이다. 지난 1분기 가계부채 규모가 3년 반 만에 국내총생산(GDP)을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졌다지만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이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막대한 유동성에 자산시장이 들썩이면서 가계 빚이 폭증한 바 있는데, 2021년 이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다소 규모가 줄었다. 다만 국제 비교에서 가계부채 비율은 조사 대상 34개국 가운데 여전히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9일 국제금융협회(IIF)가 공개한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를 보면, 올 1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잔액의 비율은 98.9%로 나타났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2020년 3분기 100.5%를 기록해 국가 경제 규모를 넘어선 뒤 2022년 1분기 105.5%로 정점을 찍은 후 3년 반 만에 90%대로 낮아졌다.
이렇듯 안정적 총량 관리와는 다르게 가계부채의 질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은 통화·금융당국의 당면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총량 관리 관점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가계부채의 질적 악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부채 총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과 함께, ‘한계 차주’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들이 정상적인 경제생활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세심한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상환능력이 크게 떨어진 서민·자영업자 등의 연체율 급등세가 심상찮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경기 부진에 고물가,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연체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서민금융의 집행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1개월 이상 연체된 개인사업자 대출총액은 지난 1분기 기준 1조 3,560억 원으로 1년 전 9,870억 원보다 37.38%인 3,690억 원이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전’이 필요할 때 자주 쓰이는 카드론·현금서비스 등 카드사 연체율도 지난해 말 기준 1.63%로 전년도 1.21%보다 0.42%포인트 뛰었고, 같은 기간 저축은행 연체율 역시 3.41%에서 3.14%포인트 오른 6.55%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무엇보다도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20% 이상 고금리 대출 이용이 불가피한 최저 신용자에게 자금 지원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햇살론 15’의 경우 지난해 1분기 4,762억 원이나 지급됐지만, 올해 1분기에는 2,371억 원을 기록하며 절반 넘는 50.2%나 떨어졌다. ‘햇살론 15’ 등 ‘한계 차주’를 위한 서민금융상품의 연체율(대위변제율)도 지난해 20%대를 웃도는 등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인 데 이어 올해 1분기 ‘햇살론 15’의 대위변제율은 22.7%로 지난해 처음으로 21.3%를 기록한 이후 3개월 만에 1.4%포인트나 뛰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 가계 부문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 Debt service ratios)은 14.2%로 전년 13.4%보다 0.8%포인트 상승했다. 이를테면 100만 원을 벌면 14만 2,000원을 원리금으로 갚아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7월 7일 국제결제은행(BIS) 집계에 따르면 주요 17개국 가운데 소득 대비 빚 부담 정도와 증가 속도가 네 번째로 높았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르웨이(18.5%), 호주(18.0%), 캐나다(14.4%)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DSR은 소득 대비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로, DSR이 높으면 소득에 비교해서 빚 상환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한국은 소득 대비 빚 상환 부담이 늘어나는 속도 역시 주요국 중 네 번째로 빨랐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착륙을 막겠다며 관련 규제 완화와 함께 저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연 30조~40조 원 공급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무리한 ‘빚투’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스트레스 DSR’의 2단계 시행을 불과 6일도 안 남은 지난 6월 25일 돌연 시행을 당초 7월 1일에서 9월 1일로 2개월 연기했다. 그 직후 이번엔 은행을 상대로 주택담보대출 가산 금리 상향을 압박하며 냉탕 온탕을 오락가락 갈지자 행보를 계속했다. 한편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3일 17개 은행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가계대출 자제를 요구하며 현장 점검을 예고했다. 그러나 정책금융을 무분별하게 풀고 DSR 규제 시행을 연기한 장본인이 바로 금융당국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당국의 졸속 행정이 사태 악화의 원인을 제공한 모양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부동산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집값도, 전셋값도 거침없이 치솟고 있다. 결단코 가계대출과 무관치 않은 시장 동향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20% 올라 약 2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수도권도 지난주 0.07%에서 이번 주 0.10%로 커졌다. 아파트 거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두드러진다. 전셋값이 1년 넘게 오르고 있는 데다 앞으로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할 거라는 예상에 주택 매수세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비 급등 등으로 서울의 주택 공급은 당초 정부 계획의 5분의 1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수급 불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 6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2021년 1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9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6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5,188건으로, 5월 4,990건보다 3.96%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집값이 급등했던 2021년 1월 5,952건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많은 거래 건수다. 지난 7월 7일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지난 5월 경기도 아파트 매매의 거래량은 총 1만 18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8월 1만 3,479건 이후 2년 9개월 만에 가장 많은 거래량이다. 주택 매매시장이 얼어붙었던 작년 12월 5,649건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를 제외한 한강 주변에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강동구 아파트 거래 건수는 올해 5월 308건에서 지난달 438건으로 1.4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성동구는 291건에서 376건으로 1.3배로 늘었다. 동작, 마포, 영등포구도 6월 거래량이 5월 수준을 앞섰다. 실거래가도 급등세를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 역시 과천, 성남, 하남, 광명, 안양, 용인 등 서울과 가까운 ‘옆세권’지역 중심으로 거래량이 증가했다. 과천의 5월 거래량은 95건으로 작년 12월 19건의 5배에 달했다. 성남의 경우 지난 5월 640건이 거래되며 작년 12월 거래량 191건의 세 배를 넘어섰고, 지난 6월 6일까지 집계된 6월 거래량은 700건으로 이미 5월 거래량을 넘겼다. 또한, 서울의 일부 초고가 아파트들은 거래될 때마다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아파트 전셋값과 분양가가 오르고 있는 데다 부동산세 감세, 주택시장에 대한 전방위적 규제 완화 등이 더해진 결과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최근 거래량 증가세가 당초 7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던 ‘2단계 스트레스 DSR’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출 한도가 줄어들기 전에 주택 구매를 서둘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스트레스 DSR 시행을 돌연 9월로 연기한 것이 집값 상승세를 더욱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도 나온다. 규제가 연기되면서 매수를 망설이던 이들도 시장에 뛰어들면 매물은 더 줄고 가격은 더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의 ‘3고(高)의 고통’이 여전한데 부동산 광풍(狂風)까지 불게 되면 민생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다. 정부는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 유혹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영끌’과 부동산 투기의 악순환이 재발하면 한국 경제가 결딴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해 보인다. 금융 정책은 당연히 가계대출 감축의 일관성을 견지해야만 하고, 부동산 정책은 의당 서민 주거 안정에 철저히 초점이 맞춰져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충분한 공급이 있을 것이라고 시장이 믿어야 집값이 안정될 수 있는데, 정부는 공급 확대를 강조해 왔지만, 지난해 주택 착공 실적이 평년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등 실제 공급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4월 23일 발표한 ‘주택 공급 상황 분석과 안정적 주택 공급 전략’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택 착공 물량은 20만 9,000가구로 최근 18년간 연평균(2005~2022년)의 47.3%에 그쳤다. 인허가는 39만 9,000가구로 연평균의 74.2%, 준공은 31만 6,000가구로 73.9% 수준이었다. 공급 확대의 핵심인 3기 신도시 조성이나 1기 신도시 재건축 등이 공사비 급등으로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에 고민을 더한다. 정부는 서둘러 부동산 안정적 공급의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집값 상승만은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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