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중개인이 되고 싶다
“현이야, 이곳이 명당인데 말이야. 이 사람들 언제 안 나가나?”현이 역시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쎄 말이에요. 빨리 이사 가라고 빌죠.”그런데 며칠 후 거짓말처럼 바로 그 가게 유리창에 ‘임대’라고 씌어진 종이가 붙어 있었다. 공간이 크고 밝아서 학생들을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라는 확신이 들었다. 부동산 업체에 당장 전화를 걸어 계약을했다. 나는 직접 그곳의 구석구석을 단장했다. 기초 공사부터, 페인트색깔, 벽에 붙일 간판과 상담실의 크기, 그리고 심지어 화장실 장식까지도 일일이 체크했다. 그때 나는 각종 문화 행사로 밤낮없이 바쁠 때였지만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다민족 학생들과 이민자들을 위한 공간마련에 힘썼다. 나는 새 사무실을 찾아올 모든 사람들이 보다 편안한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꼼꼼히 정리해 나갔다. 내가 벌이는 사업이 단순한 이윤 추구에 머물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찌우는 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적어도 나 같은 불행한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들이 나오지 말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해 나갔다.
새로운 사무실은 4개월의 공사 끝에 2001년 7월 밴쿠버 최대 번화가인 다운타운 한복판에 ‘김옥란’이라는 대형 한국말 간판을 달면서 업무에 들어갔다. 유학생들의 삶의 터전이 내 손에 의해 새롭게마련된 것이었다. 우리 사무실이 자리잡은 이후 조용하기만 했던 그주위의 상권이 갑자기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많은 학생들이 만남의장소로 우리 사무실을 이용했다. 그들은 이렇게 약속했다.
“김옥란 누나(언니) 집 앞에서 만나자.”토론토와 캘거리,몬트리얼 그리고 빅토리아 등 캐나다 곳곳에 지사를 갖추게 되었다. 나는 마치 일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고된 식모살이를 하던 때로부터 5년여 동안 실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 나는 중국과 유럽에 진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조만간그런 꿈이 이뤄지길 기원해 본다. 그것은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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