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로부터 받았다
엄마가 기침쟁이였다면 나는 코피쟁이였다. 나는 툭하면 코피를흘렸다.
어떤 때는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주르륵 코피가 흘러내렸다. 내 코는 언제나 퉁퉁 부어 있었다. 혹 내가 코피를 흘릴까봐 아이들은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했다. 누가 코를 슬쩍 스치고 지나 가기만해도 코피가 주르르 쏟아졌다. 나는 내 몸속에 아주 나쁜피가 있어서 그것이 코피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코피가 나오는 것은 나쁘지 않아. 나는 지금보다 더 깨끗해져야해. 아마 이제 곧 그렇게 될걸.’
코피로 인해 나는 체육 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없었다. 농구도 하고 싶었고 발야구도 잘할 수 있었지만 나는언제나 열외였다. 혼자서 교실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리곤 했다.
“내가 생선 궤짝 몇 개를 머리에 이고도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데.. .”
중학교 때 나는 코피와 관련된, 결코 내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는사건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체육 시간, 그날도 나는 교실을 지키는 당번 아닌 당번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우리 반 반장인송순도 몸이 아프다며 나와 함께 교실에 남았다. 나는 이날 유독 코피를 더 많이 흘려 현기증이 심하게 났다. 변변한 양호실도 없었던지라 나는 책상들을 이어서 붙인 후 그 위에 누웠다.
한참을 그렇게 비몽사몽 헤매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느껴졌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나는 ‘송순이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무척 흐리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곧 내 의식은 가물가물해졌다.
마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그 누군가의 모습이 실루엣이 되어 다가왔다. 나는 ‘송순은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는데, 오늘좀 많이 아픈가 보지....’하면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결이었지만희미하게나마 송순이 윤숙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윤숙이 송순에게 자기 물건을 갖다 달라는 부탁을 했나 보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책상 위에 누워 계속 선잠을 잤다.
그러나 얼마나 지났을까. 체육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로돌아오면서부터 소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윤숙의 입에서 외마디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앗, 내 지갑! 지갑이 없어졌어!”
아이들이 순식간에 윤숙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체육 시간에감쪽같이 사라진 윤숙의 빨간 지갑을 놓고 아이들은 술렁거렸다.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나는 ‘교실 안이 왜 이렇게 시끄럽지?’ 하면서 그냥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고개를 들고 몽롱한 눈으로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며 뭔가수군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유쾌한 눈빛들이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주
번이 내게 다가와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른다고 일러 주었다. 교무실로 가면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김옥란, 솔직하게 말해라. 네가 윤숙이 지갑을 가져갔지?”
“네? 뭐라고요?”
“아이들이 네 짓일 거라고 하는데...... . 네가 교실에 있었잖아.”
“아니에요. 저는 그런 짓 안 했어요.”
“체육 시간에 너 혼자 교실에 있었잖아.”
“아니에요. 송순이도 남아 있었는걸요.”
“송순이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중간에 화장실에 갔다 와서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은 모른다고 그러더라.”
선생님의 말씀은 차분하면서 묘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순간 어렴풋하게 남아 있던 송순의 움직임이 생각났다.
“전 분명히 아니에요. 제가 기운이 없어 책상 위에 누워 있는데,송순이 윤숙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 같았어요. 그래요. 빨간색이었어요.저는 윤숙이 송순에게 그것을 맡아서 보관해 달라고 부탁한 줄알았어요.”상황이 다급해지자, 어렴풋한 광경들이 되감기를 한 비디오 테이
프처럼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그 말 사실이냐?”
선생님은 적잖이 놀라는 듯했다. 송순은 반장에다가 동네 유지의딸이었으며 모범생으로 통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다 단호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저는 친구를 쓸데없이 모함하지 않아요. 제가 본 것을 그대로 말씀 드리는 것뿐이에요.”
선생님도 결국에는 내 말을 믿어 주었다. 교무실을 나오면서 나는 내 혐의가 깨끗하게 풀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나는 송순과 골목 길에서 맞닥뜨려야 했다. 시장에 들러 엄마와 함께 생선 궤짝을 나눠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 어귀에서 팔짱을 끼고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위세가 당당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긴 다리를 더욱 빛나 보이게 해주는 예쁜 구두가고개 숙인 내 눈에 들어왔다. 송순은 구두 코끝으로 땅바닥에다 원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너, 나하고 얘기 좀 하자. 따라와 봐.”
엄마는 저만치 앞서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송순이 다시 소리쳤다.
“빨리 오라면 와!”
나는 이고 있던 궤짝을 얼른 집 안에 내려놓고 송순에게 갔다. 그녀의 말에는, 학교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잔뜩 힘이 들어 있었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나는 그 아이와 마주 섰다. 송순이 눈을 부라리며본론을 꺼냈다.
“너, 내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너 한 번만 더 선생님에게 엉뚱한 소리 했다가는 죽을 줄 알아.”그녀의 말이 너무 단호했으므로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가고 계시다. 나보고 너를 데리고 오라그러시더라. 그 얘기를 다시 한 번 하면 넌 죽는 거야. 알아듣겠어?”
나는 그 순간 송순이 나를 정말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서 안 따라오고 뭐 하냐. 빨리 가야 해!”
그렇게 송순의 힘에 밀려 억지로 그 아이의 집까지 갔다. 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선생님과 송순의 식구들 앞에서 ‘송순이 지갑을가져가지 않았고, 내가 너무 아파서 잘못 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결국 내 스스로 ‘도둑은 나’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나로서는 그 누명을 고스란히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송순에게 맞아 죽고 싶지 않았다.
그 다음날, 학교에는 윤숙의 빨간 지갑과 관련해 소문이 쫘악 퍼져 있었다.
‘생선 장수 딸이 남의 지갑을 훔쳐 놓고 애꿎은 송순에게 덮어씌웠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지나가기만 하면 쑤군거렸고, 선생님들마저도 나를 도둑으로 취급했다.
학교에서 나의 결백을 믿어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큰언니의 맏딸로, 나와는 생일이 하루 차이가 나는 동갑내기 조카 민숙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나는 도둑이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 엄마가 생선 장사를 하면서가난하게 살아도, 우리 형제는 절대로 남의 물건을 훔칠 만큼 나쁘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것이 말이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나는 아무 곳에서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억울하고 분했다. 그러나 그렇게할 수는 없었다. 송순은 내게 그만큼 두려운 존재였다. 그 아이는녹동에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부잣집 딸이었다. 줄곧 반장을 도맡아 왔고 공부도 항상 1등이었다. 키도 컸고 힘도 셌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송순의 그 같은 배경에 주눅 들어 있는 주변의 무조건적 신뢰였다. 그런 송순을 생선 장사를 하는기침쟁이 과부의 딸이자, 코피쟁이인 내가 맞설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오늘의 치욕을 언젠가는 꼭 되갚아 주겠다’며 가슴속에 꼬깃꼬깃 ‘빨간 지갑’을 새겨 넣는 일밖에 달리 할 것이 없었다.
윤숙의 빨간 지갑을 두고 벌어진 송순과의 트러블은 두고두고 내어린 시절의 상처로 남게 되었다. 그 일은 한창 예민하던 내 사춘기시절을 어질러 놓은 대사건이었다. 그 불쾌한 기억은 악몽이 되어 내청춘을 줄곧 관통했다. 아무리 애를 쓰고 지우려 해도 오히려 더욱선명하게 내 기억 속에 자리잡아 나를 괴롭혔다. 그 아이의 당돌함은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에 어이없게 굴복해 버린 비굴한 내 자신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수십 번 마음속으로 ‘참아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속 응어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나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크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송순의 큰 키, 단단한 배경에 진실은 그렇게 쉽게가려져 버렸다.
내 청춘은 때로는 그것으로 인한 억울함으로, 때로는 자괴감으로가위눌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나는 내 마음속 격랑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당사자끼리라도 매듭을 지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밤새 장문의 편지를 썼다. 송순에게 결코 풀릴 것 같지 않은 내 억울한 심정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편지를 갖고 그아이의 집으로 찾아갔다. 송순은 없었고 그의 동생이 나왔다. 나는편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며 돌아왔다. 바로 그 순간까지도 마음한구석에는 송순을 대면하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오히려 다행’이라
는 생각이 교차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녀의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내가 언니 대신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 편지를 언니에게 주지않고 자신이 읽어 보았다는 말이었다.
그 후 송순은 내 인생에 있어서 투지를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가되었다.
그날의 수치와 굴욕감을 더 이상 맛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큰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 갔다.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나는 안간힘을 쓰며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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