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46) 두 달치 월급과 왕복 비행기 삯

이현진 기자 / 기사승인 : 2025-03-30 09: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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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기다리는 사람을 외
면하지 않는다

막상 집으로 돌아왔지만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집 안엔길고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거실에 앉아 책만읽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짐은 여기저기에 다이얼을 돌렸다.
큰아들 더그는 몬트리올의 어느 한 호텔에서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들어야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뉴펀랜드로 가기 위해 그곳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하룻밤을 묵고 있었다. 우리는 짐이 친척들에게비보를 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슬픔의 도가니 속으로빠져 들었다. 눈이 부시도록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할머니의 장례식은 조용하고 조촐하게 치러졌다. 상주로는 샤론, 짐, 린, 그리고내가 전부였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지 1주일만에 한줌의 재가 되
어 우리들 앞에 놓여졌다. 화장은 할머니의 바람이었다. 우리는 할머니를 웨스트밴쿠버의 아름다운 해변에다 뿌려 드렸다. 그곳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똑같은 모습으로 가셨던 곳이었다.
집 식구들은 차례대로 한 줌 한 줌, 할머니를 흩뿌리며 바다 위로보내 드렸다. 내 차례가 되었다. 상자 속에 손을 넣었다. 혹 할머니의 영혼이 아프기라도 할까 봐 꽉 움켜잡을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뿌리고 나니 잠잠하던 파도가 갑자기 내게로 덮쳐 왔다. 할머니의 영혼이 내게로 달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자리에 쓰러져다시 울었다. 샤론 역시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부둥켜 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슬픔을 달랬다.
땅거미가 질 때까지 그곳 바닷가를 떠날 수 없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누구도 먼저 말을 하려 들지 않았고, 그래서 내내 침묵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다시 책만 읽고 있었다. 할머니의 체취와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그곳에서 누구 하나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들의 냉철한 이성이 나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속으로 비통해하는 것인가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밀려오는 슬픔을 견디지 못해 내 방으로 들어가 내 방식대로 엉엉 울었다. 베개를 부여잡고 머리를 벽에 처박아 가면서 “아이고, 아이고”소리 지르며 통곡을 했다. 그것은 다시 한번 길을 잃어버린 외로운 자의 울부짖음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불쌍해서 울었고,나의 현실이 무섭고 막막해서 울었다. 할머니는 나의 전부였다. 꿈이었고 희망이었으며, 그것을 함께해 줄 지원자요 동반자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1주일이 흘렀다. 샤론도 린도 자기 집으로 떠났고, 짐도 회사에 나갔다. 나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보이는 것 마다 할머니를 떠오르게 했다. 할머니의 조용하면서도 인자하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미칠 것만 같았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샤론은 이미 나에게 두 달치 월급을 챙겨 주었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 한번 다녀와요.”
그러면서 비행기 표를 살 돈도 주었다.
“새 직장이 생길 때까지 여기 머물러 있어도 괜찮아요.”
나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배려였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머니집에 계속 있는다면 나는 결코 할머니로부터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짐은 퇴근하고 오면 잠깐 마른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나는 불도켜 놓지 않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한국을 떠날 때 친구이자 조카인민숙이 사 준 곰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서러움이 북받쳐 “마미, 마미”하며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자 지하실에 있던 짐이 뛰어 올라왔다. 짐을 보자 내 울음은 더 커졌다. 짐도 여태껏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 내어울었다.
‘그랬구나. 그토록 냉정해 보이던 이들도 속은 숯처럼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구나.’ 그렇게 비통의 시간은 또 지나갔다. 나는 내 자신에게 다시 최면을 걸어야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할 처지에 집 안에만 틀어박혀 눈물만 짜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슬퍼하지 말자. 가능하면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자. 어디든 가자. 가서 닥치는 대로 살아가자.’당장 마땅히 갈 곳도 없었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이민 신청을 해서 영주권을 얻으려면 워킹 비자를 갖고 만 2년동안의 근무 시간을 채워야 했다. 스폰서로부터 월급을 받은 증빙자료가 없으면 근무 기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하루라도 빨리 새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나는 억지로 마음을 추슬러 내키지 않는 곳이지만 필리핀 남자 스탠이 있는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그에게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보살피는 일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가정부 일보다는 노인을 보살피는 일이 훨씬 시간적 여유가 있어 영어 공부를 하
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노동의 강도도 가정부일보다는 훨씬 덜했다.
스탠의 사무실은 언제나 같은 풍경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나선필리핀 여자들이 스탠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나는 9개월 동안의긴 여행을 끝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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