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52) 내 이름이 찍힌 명함을 만들다

이현진 기자 / 기사승인 : 2025-04-10 08: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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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어깨에
날개를 달아 준 사람들

어느 일요일, 한국 사람이 없던 내가 다니던 교회에 한국 여학생2명이 왔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며칠 후, 이들 학생 중 한 사람인 최길숙 학생이 울면서전화를 했다.
캐나다에 온 지 1주일이 되었다는 길숙은 영어 학교에서 하숙집을 잘못 알선해 주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내일 당장 나와야 한다
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처음으로 하숙집 소개를 해 주었던 진 아주머니께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청했다. 고맙게도 그녀는 세 곳의 전화번호를 주면서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길숙을노스밴쿠버에 있는 마음씨 좋은 마가렛 아주머니 집에 보내 주었다.물론 소개료는 받지 않았다.
청소 일이 끝나고, 밴쿠버 시내로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숙소에서 막 나오려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가 길어지면 5시 5분 차를놓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받을까 말까 하다가 혹시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현숙이라고 하는데요, 기억 나세요? 지난주에 교회에서 만난.....” 길숙과 함께 만났던 그 학생이었다.
이틀 후 짬을 내어 현숙을 만났다. 21살의 그녀는 다니던 대학을휴학하고 영어공부를 위해 어학 연수를 온 학생이었다. 현숙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영어를 빨리익힐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캐네디언 룸메이트와 생활하라고 처방을 내렸다. 나는 그녀를 로리라는 캐네디언 아가씨가 사는 리치먼드 지역으로 이사를 주선했다.
그녀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시작되었다.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러운현숙은 누구보다 내가 처한 고단한 현실을 잘 이해해 주었다. 현숙은 늘 지쳐 있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몸을 주물러 주기도 하고 서툴지만 뜸도 놓아 주었다. 가끔은 짐과 함께 3명이 영화 구경을 가거나레스토랑에 가서 음식을 먹으며 우정을 키워 갔다. 이렇게 캐나다에영어 공부를 하러 온 학생들과 돈독한 관계를 넓혀 나가자, 어느 날한 학생이 나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역시 학생들을 돕는 과정에서만난 김정순이라는 학생이었다.
“언니, 명함을 만들면 좋겠어요.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많으니까전화번호를 일일이 적어 주는 것보다는 명함을 주면 좋잖아요. 언니명함 나오면 나도 학생들에게 나눠줄께요.”
명함이라..... 토요일 아침, 한인이 운영하는 작은 인쇄소를 찾아가 최소 주문량인 250장의 내 명함을 주문했다. 흑백에다 디자인은커녕 로고나 마크도 없이 상단에는 ‘김옥란’, 글 바로 밑에는 ‘홈스테이 소개’ 라고 집어넣었다. 남의 집에 살고 있어서 주소는 쓰지 않았고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전화번호만 넣었다. 두 어달 후 이 명함들을 다 소비하고 난 뒤에는 ‘홈스테이 소개’ 옆에 ‘학교 소개’라는글도 추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명함은 그것을 만들자고 제안한 정순과 현숙의손에 의해 한국 학생들에게 전해졌다. 나는 이들의 적극성에서 적잖은 자극과 용기를 얻었다.
그동안 해 오던 일을 사업으로 연결 시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그들로부터 가질 수 있었다. 특히 현숙은 나와 가까이 살면서 많은도움이 되어 주었다. 현숙은 나와 의자매를 맺었다. 우리는 함께 많은 얘기를 나누며 자매의 정을 쌓아갔다.
이 하늘 아래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하나 둘씩 생겨 간다는 것은무척이나 고맙고 든든한 일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현숙은 공항 전화부스에서내 자동 응답기에 고생만 하고 있는 나를 두고 혼자 간다며 울먹이는 이별의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온 나는 현숙의 목소리를 들으며 많이 울었다. 현숙은 다니던 한국의 대학에복학을 했고 나에게 학생들을 몇몇 보내 주었다. 나는 그녀가 너무고마워 유학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매년 방학 때면 그녀를 밴쿠버로 초청했다. 그녀는 대학을 마치고 서울에 있는 우리 유
학원의 지사에서 근무했고, 나중에는 캐나다로 와서 나와 함께 일을했다. 그녀는 우리 회사에서 신청한 워킹 비자를 받았고, 그 후 영주권을 받게 되었다. 캘거리 지사에서 매니저로 일을 하기도 했던그녀는 나의 동지이자 후원자였다. 그녀와 나에게는 어렵던 시절,함께 세웠던 목표들 가운데 두 가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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